글ㆍ사진 = 김진 여행작가
지난 2018년 12월 27일~28일 간 진행되었던 완주군 팸투어를 함께해주신 김진작가님의 기사 스크랩입니다~
일제 양곡창고였던 삼례문화예술촌의 건축양식에 대해 소개되어있답니다~
완주관광에 대한 궁금한 사항은 완주군관광지원센터 063-290-3930 으로 연락주세요~
완주군 농촌관광에 대해 알고 싶으시다면 http://maultong.co.kr/ (사)마을통 완주군 농촌관광 홈페이지를 참고해주세요~
서울 성수동은 산업시설인 창고가 어떻게 재탄생할 수 있는지 보여주는 가장 대중적인 사례다. 정미소와 공장 부자재 창고로 쓰이던 건물은 카페 겸 갤러리를 넘어 관광명소로 변신했다. 업사이클링의 대표적인 사례다. 산업구조나 역사가 변하면서 더 이상 쓸모 없어진 창고가 문화공간으로 재탄생하고 있다. 밋밋했던 지역에는 생기가 돌고 지역주민의 삶도 다채로워졌으며, 여행자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대구 창고였던 노르웨이 브리겐 목조 건물
브리겐 목조창고 풍경 |
원래의 용도를 상상하기 어려운 반전 매력의 창고를 꼽는다면, 노르웨이 베르겐 항구 지역인 브리겐(Bryggen)의 목조건물이 있다. 브리겐에는 귀여운 목조건물 10여채가 바다를 향해 줄지어 서 있다. 날카롭게 솟은 박공지붕의 건물은 외양은 같지만 빨강, 노랑 등 색깔이 제각각이다.
이 목조건물은 중세부터 독일 상인들이 대구 보관 창고이자 사무실로 쓰던 곳이다. 브리겐의 역사는 14세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항해술이 발달하면서 먼 바다로 나가게 된 바이킹들은 어마어마한 대구어장을 발견해 그물이 찢어질 정도로 대구를 잡았다. 어획량이 급격히 늘면서 브리겐은 대구 집산지가 됐고 독일을 포함한 유럽으로 판매하면서 무역항으로 번영을 누렸다. 게다가 당시 유럽의 가톨릭 금육재(禁肉齋) 기간에 말린 대구가 인기리에 팔려나갔다.
무역활동을 활발히 벌였던 유럽 상인들은 해상교통의 안전을 보장받고 상권을 확대하기 위해 동맹을 맺었다. 독일 상인의 주도하에 형성된 한자(Hansa) 동맹이다. 브리겐이 무역항으로 발전하자 독일 상인은 삼각형 지붕의 목조건물을 짓고 대구 같은 무역 상품을 저장하는 창고나 사무실로 썼다. 독일 무역회사의 해외지사로 이해하면 쉽다.
브리겐에서 대구 창고로 쓰이던 건물은 지금 카페나 갤러리로 됐다. |
독일 상인들은 나무 창고에 좀이 슬지 않도록 하기 위해 건물에 생대구를 압착해 만든 어유를 바르기도 했다. 그래서인지 건물은 화재에 취약했다. 화재로 소실되기도 몇 번. 1406년과 1702년 대화재는 모든 건물을 잿더미로 만들었다. 하지만, 애초의 설계도면에 따라 건물의 형태를 그대로 복원했다. 석조로 지을 수도 있었겠지만, 전통과 규율을 엄격히 지키는 독일 상인들은 망치와 톱만 쓰는 전통 건축기법으로만 지었다. 원형 그대로를 재현한 건물은 빼뚤빼뚤해서 더욱 사랑스럽다. 동화마을처럼 다닥다닥 붙은 목조건물은 유네스코 세계유산 목록에도 올라 있다.
목조건물에는 북해산 대구와 건어물이 항상 가득했을 것이다. 하지만, 400년 가까이 무역으로 활기가 넘쳤던 브리겐은 현대적 의미의 무역이 시작되면서 무역항으로서 의미를 잃어갔다. 건물 외관은 그대로지만 내부는 아기자기한 숍이나 레스토랑, 카페, 예술가의 아틀리에, 사무실 등으로 변신했다. 비린내 대신 문화의 향기가 흐른다. 중세의 목조 건축물은 여전히 브리겐 항구를 오가는 배들을 바라보고 있다.
일제 양곡창고였던 완주 삼례문화예술촌
삼례문화예술촌 디자인뮤지엄 |
전주를 동그랗게 감싼 완주엔 보석 같은 문화지역이 있다. 삼례읍 삼례역에 내리면 바로 앞 평평한 땅에 완주 삼례문화예술촌이라는 간판이 눈에 띈다. 협동생산 공동판매. 촌스럽지만, 연륜이 느껴지는 글씨에서 한국 근현대사가 느껴진다.
오순도순 모여 있는 창고엔 일제 수탈의 아픈 역사가 배어 있다. 구 삼례 양곡창고(등록문화재 580호)는 일제 강점기 양곡 창고와 관사로 쓰였던 곳이다. 철도와 도로가 나기 전부터 삼례는 호남 최대의 역참(驛站)이었다. 해남과 통영에서 한양으로 올라가는 길이 바로 삼례에서 만나기 때문이었다.
1914년 삼례역이 개통되면서 일제는 만경평야에서 생산되는 양곡을 철도를 이용해 삼례를 거쳐 군산으로 옮기고 일본으로 반출했다. 1920년대에는 양곡창고를 신축했고 일제강점기 이후부터는 농협창고로 활용했다. 2013년에 이르러서 지금의 삼례문화예술촌으로 재탄생했다.
삼례 양곡창고는 조적조 2동과 목조 4동으로 구성된 건축물이다. 조적조(組積造)란 돌, 벽돌, 콘크리트 블록 등으로 차곡차곡 쌓아올린 건축양식으로 19세기 말부터 우리나라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횡력에 약해 지진 같은 재해에 안전성이 떨어져 요샌 잘 쓰이지 않는다.
모모미술관 |
‘모모 미술관’은 전시된 작품도 흥미롭지만, 일제의 목조 트러스(truss) 건축양식을 엿볼 수 있어 의미가 남다르다. 트러스는 목재를 세모로 구성해 하중을 분산시켜 건물 중간에 기둥이나 내력벽을 설치하지 않아도 되는 장점이 있다. 공간을 넓게 확보할 수 있다는 뜻이다.
북하우스 내 카페. 일제 건축양식이 그대로 남아있다. |
일제는 한 가마니의 쌀이라도 더 보관하기 위해서 지금은 흔치 않은 목조 트러스 방식으로 양곡창고를 지었다. 양곡에 습기가 차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만들어 놓은 환기시설도 지붕과 벽에 여전히 남아 있다. 지금은 막아버렸지만, 건물 바닥엔 습기가 차는 것을 방지하고 쥐가 드나들지 못할 정도로 통로를 내어놓았던 흔적이 있다. 콘크리트로 마무리한 벽과 나무 뼈대 사이엔 손바닥이 들어갈 정도로 틈새가 있는데, 이 또한 창고에 습기가 차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건축방법이다.
북하우스 |
‘삼례는 책이다’라고 적힌 노란 간판이 눈에 띄었다. 일제를 위해 쌀을 쌓아두었던 창고엔 지금 책이 가득하다. 더 반가운 것은 어린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교과서였다. 산수책, 도덕책, 자연책의 표지를 보니 녹색 나무책상과 난로에 올린 도시락이 절로 떠올랐다. 양곡창고를 개조한 헌책방은 2층으로 구성돼 있고 시대별 베스트셀러가 주제별로 빼곡하게 전시돼 있다. 물론 살 수도 있다. 누런 종이와 오랜 활자에서 풍겨오는 향기는 추억을 소환한다.
글·사진=김진(여행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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